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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의병 열전] 15. 장인선 의병장, 이원신·차복만·최예타 의병

작성일 : 2023.01.10 15:01 수정일 : 2023.01.10 15:07

작성자 : 조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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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화에서 의병 활동 등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순국하거나 투옥되었으나 이에 대한 사료 발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강화 의병들의 공적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세월에 묻혀 잠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강화군(군수 유천호)은 2020년 11월 4일 인천대학교(이사장 최용규)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태룡)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강화군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신청’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그 결과 강화군과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일제침략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30명을 추가 발굴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강화군은 현재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 30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 및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강화 의병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 의병 열전’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강화군에서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인 장인선 의병장, 이원신·차복만·최예타 의병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장인선 의병장

본적 : 미상
생년 : 미상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장인선(張仁善) 의병장은 강화 출신 강화의병장으로 1907년 여름 의병을 일으켜서 황해도 배천·평산·해주군, 경기도 인천부 용동·교동군과 강화군 고려산(高麗山)과 서동사(西桐寺) 등지에서 지홍윤(池弘允, 1991년 애국장) 의병장, 이천명(李天命) 의병 등과 함께 의병 투쟁을 벌이다가 1908년 7월 피체되었다.

한편 지홍윤 의병장은 강화도에서 장인선 의진에 들어가서 소대장으로 활약하다 장인선 의병장이 피체되자 의병장에 올라 경기도 강화·교동군, 황해도 연안군 등지에서 맹활약했으나 1909년 5월 피체되었다.

장인선 의병장은 피체기록은 있고, 재판 기록이 없으나 지홍윤 의병장처럼 피체 후 순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원신 의병

본적 : 미상
생년월일 : 미상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길상면(吉祥面) 전등사(傳燈寺) 남문현(南門峴)

이원신(李元信) 의병은 강화 출신으로 1907년 4월 헤이그특사 이준(李儁) 일행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호종(護從)하고 돌아온 이능권(李能權)이 이준 열사가 자결하고, 광무황제가 퇴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으킨 ‘대동창의진(大東倡義陣)’에서 활약하였다.

이능권 의병장은 강화군 길상면, 상도면 등지에서 총기 구입을 위해 모금활동을 벌였고, 모금된 군자금으로 총기 구매를 위해 나섰다가 1908년 12월 14일 피체되었는데, 이원신 의병은 이에 앞선 12월 10일 남궁경찬(南宮敬鑽)·남궁문경(南宮文景)·이호춘(李浩春)·김원식(金元植) 의병 등과 함께 인천경찰서 순사대에 피체되었으나 판결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차복만 의병

본적 : 미상
생년월일 : 미상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제도면(諸島面) 아비도(阿比島)

차복만(車福萬) 의병은 융희 2년 1월 5일(음력 12월 2일) 이병호(李秉浩)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투쟁을 하던 중, 그해 2월 21일(음력 1월 20일) 28명으로 구성된 이병호 의진의 분대장으로 경기도 교동군 교동읍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단도와 의복을 노획하고, 이어 의진 32명과 함께 교동읍 김현상(金顯常)·유위식(劉偉植)에게 군자금을 강청하여 각 현금 2천 냥과 3백 냥을 수합하는 활동을 한 후 피체되어 이듬해인 1909년 1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되자 공소하였는데, 경성공소원에서는 징역 15년이 선고되어 고초를 겪었다.

*제도면(諸島面) : 1895년 6월 18일에 공포된 지방제도개혁에 관한 조칙 및 칙령을 통해 강화도호부는 강화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강화도 서남쪽 도서 14개의 유인도 를 묶어서 제도면(諸島面)을 신설하였다.
*융희 2년 : 융희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연호. 융희 2년은 1908년을 의미한다.
*강청 : 무리하게 억지로 청함.
*수합 : 거두어서 합침. 또는 모아서 합침.
*공소 : 1심에 불복하여 2심으로 가는 것.

 

최예타 의병

본적 : 미상
생년월일 : 1876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간재동(間在洞)

최예타(崔禮他) 의병은 강화 출신으로 강화분견대 병정이었다.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지홍윤(池弘允) 의병장은 의병을 조직하여 황해도 배천·평산·해주군, 경기도 인천·교동·강화군 고려산(高麗山)과 서동사(西桐寺) 등지에서 활약하였는데, 최예타 의병은 1908년 음력 11월부터 지홍윤 의병장의 의진에 참여하였다.

그 후 최예타 의병은 황해도 배천·평산·연안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1909년 1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지홍윤 의병장이 부상을 당한 후 의진을 이천명(李天命) 중대장이 이끌게 되자 그 의진에서도 활약하였다.

그해 4월 일본 군경의 강경 진압에 이천명 의병장은 총기를 은닉하고 일시 의진을 해산했는데, 최예타 의병은 동료인 김신명(金愼明)과 함께 1909년 5월 27일 해주경찰서 순사대에 의해 피체되었다.

조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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