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12.28 16:55
작성자 : 조홍식
과거 강화에서 의병 활동 등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순국하거나 투옥되었으나 이에 대한 사료 발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강화 의병들의 공적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세월에 묻혀 잠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강화군(군수 유천호)은 지난해 11월 4일 인천대학교(이사장 최용규)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태룡)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강화군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신청’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그 결과 강화군과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일제침략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30명을 추가 발굴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강화군은 현재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 30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 및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강화 의병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 의병 열전’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강화군에서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인 유성준·이재수·이천명·장동섭 의병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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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준 의병 본적 : 미상 유성준(兪成俊) 의병은 강화 출신으로 1907년 4월 헤이그특사 이준(李儁) 일행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호종(護從)하고 돌아온 이능권(李能權)이 이준 열사가 자결하고, 광무황제가 퇴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동창의진(大東倡義陣)’을 조직하여 의병을 일으킬 때, 김추옥(金秋玉)·여만복(呂萬卜)·이호춘(李浩春) 등과 더불어 핵심 참모로 참여하였다. 그는 대동창의단 참모로서 강화군 길상면, 상도면 등지에서 총기 구입을 위해 모금활동을 벌였고, 1908년 음력 11월 1일 전등사(傳燈寺)에 묻어둔 총기 2정을 주지 송계찬(宋戒燦)이 일본군에 넘긴 죄를 물어 수장하는 등의 일을 하다 피체, 원심 재판의 피고인으로 나오지만 판결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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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의병 본적 : 미상 이재수(李在秀) 의병은 경기 강화 출신 전직 군인으로 1907년 8월 군대해산 후 의병에 참여하여 의진(의병장 불상)의 분대장으로 활약하다가 1909년 6월 4일 황해도 배천수비대와 배천주재소 순사대의 합동 정찰에 의해 경성 출신 이남산(李南山), 황해 배천 출신 김봉석(金鳳石)과 함께 황해도 연안군 홍장면 사동(寺洞)에서 피체되었다. 이재수 등은 심문을 받고 은닉한 ‘모젤’ 단발총 5정 등 무기를 빼앗겼으며, 배천수비대에서 취조를 받았는데 이후 행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황해도 지방 판결문은 알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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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명 의병 본적 : 미상 이천명(李千命) 의병은 1907년 8월 강화분견대 상등병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참여하여 황해도 배천·평산·해주군, 경기도 인천부 용동·교동군과 강화군 고려산(高麗山)과 서동사(西桐寺) 등지에서 활약한 지홍윤(池弘允) 의진에서 소대장을 하면서 1908년 7월 인천 거주 이순서(李順西)로부터 모젤총 5정을 구입하여 의진의 화력을 증강하였다. 그러던 중 1909년 1월 일본군과 전투에서 지홍윤 의병장이 부상을 당하면서 총 32정과 탄약을 은닉하고, 이어 이진룡(李鎭龍) 의진에 참여하여 황해도 평산·연안·배천·해주, 경기도 강화에서 의병투쟁 중, 그해 4월 하순 부하 8명이 피체되자 의진을 해산하고 행방을 감추었다. *이진룡(李鎭龍) : 자는 석대(錫大) 또는 운서(雲瑞), 호는 기천(己千).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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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섭 의병 본적 : 미상 장동섭(張東燮) 의병은 강화 출신의 의병이다. 1907년 8월 군대해산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킨 강화분견대 부교(副校) 출신 지홍윤(池弘允) 의병장은 前 육군 기병대 부교 출신의 김봉기(金鳳基) 의병장의 의진과 협력하여 강화·교동·풍덕·개성 지역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강화도, 석모도, 주문도 등 강화도 인근 10여개 도서지방에서 7~8척의 배를 이용하여 의병투쟁을 전개하자 일본군은 군한 ‘치하야칸[千早艦]’을 비롯하여 수뢰정 3척에 육전대(陸戰隊)와 순사대를 동원하여 의병 진압에 나섰는데, 장동섭은 1908년 9월 7일, 고호섭(高浩燮)과 함게 의병활동을 한 혐의로 강화도에서 피체되었다(재판기록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부교(副校) : 조선 후기의 육군 하사관. 갑오개혁의 군제(軍制) 개편에 따라 두었다. 정교(正校)의 아래, 참교(參校)의 위이며 지금의 중사(中士)급이다. 당시 급료는 정교는 10원(元), 부교는 9원, 참교는 8원, 병졸은 5원 10전이었다. 1907년 군대 해산령으로 없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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