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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세상 촉] 국가의 가계부, 강화군의 가계부

작성일 : 2022.12.05 16:57

작성자 : 양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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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예전에 가계부(家計簿)가 유용한 선물인 적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서점에는 가계부가 전시됐고, 여성용 잡지는 가계부를 별책 부록 선물로 내놓으며 판매 홍보전을 펼쳤다. 가정의 씀씀이를 적는 가계부는 말 그대로 가정의 ‘살림 거울’이었다. 신혼부부들은 특히 가계부를 애지중지했다. 젊은 아낙은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동태 두 마리, 연탄 100장, 남편 교통비와 용돈, 시댁과 친정집 선물 목록까지 빠짐없이 가계부에 적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 연말이 되면 가계부에는 한 해의 삶이 고스란히 역사로 남았다.

家計簿는 가정의 삶이 투영된 ‘거울’ 

가계부를 쓰면 살림살이를 되돌아보게 되기 마련이다. 근검절약이 일상화돼 ‘짠 살림’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역할은 대부분 여성의 역할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남편은 술값에 담뱃값에 씀씀이가 크고, 아내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절약하고 절약했던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었다. 그런 가정의 스토리가 담긴 ‘가계부 콘테스트’도 열렸으니, 그 아련한 시절의 추억은 중년층 이상이라면 누구나 직간접으로 경험했을 터이다. 그게 삶이고 그게 일상이고 그게 가정의 역사였던 것일 터이다. 

요즘은 가계부를 쓰는 가정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종이 가계부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서점에 가 봐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가계부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외려 더 진화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에 앱을 깔고 가계부를 쓴다고 한다. 똘똘한 가계부 덕분에 한 달 살림, 한 해 살림을 머리 아프게 계산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 폰의 앱이 알아서 척척 계산해준다. 당초 계획보다 더 헤프게 썼는지, 아니면 너무 자린고비로 생활했는지에 대한 평가까지 해주니 문명의 이기(利器)가 무서운 세상이다.     

‘스마트폰 가계부’를 쓰는 젊은 부부들은 경제공동체인 동시에 경제독립체이기도 하다. 공동 경비는 각자 주머니에서 나오고, 각자의 경제권은 간섭하지 않는 게 요즘 트렌드라고 한다. 공동 경비, 즉 살림과 관련한 경비는 스마트폰 가계부에 올려 부부가 공유한다니 참으로 지혜로운 젊은이들 같다. 한편으론 ‘너무 야박해 삶이 팍팍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성세대의 우려일 뿐, 상당수 젊은 부부들 사이에는 경제공동체 문화가 일반화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더치페이(Dutch Pay)가 일반화한 것처럼. 

스마트폰 가계부로 진화, 젊은 부부에 인기

가계부의 진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스마트폰 가계부는 정감과는 거리가 멀지만, 투명하고 정확하다는 장점도 있을 듯싶다.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기에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2022년을 보내면서 2023년 새해를 맞아야 할 요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거창한 말보다 스마트폰 가계부든 종이책 가계부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일반 가정의 가계부는 정말 소중한 삶의 기록이다. 자녀의 성장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연로하신 부모님 또는 보내드린 부모님과의 추억도 생생하게 담겨 있을 것인 까닭이다. 

가정을 넘어 국가를 보면 ‘국계부(國計簿)’는 더 중요하다. 국가의 연간 살림살이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젊은 부부의 ‘앱 가계부’처럼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 중의 책무다. 국민이 낸 세금을 단 1원이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돈보다 더 소중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씀씀이를 가계부처럼 기록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그러려면 예산을 잘 짜야 한다. 여야의 정쟁으로 설계가 비틀려서는 안 된다.

‘國計簿’는 더 중요, 1원도 낭비 안 돼

그런데 새해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새해 예산안은 국내외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새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1%대로 전망되고, 경기침체로 인한 국민의 삶이 더 팍팍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런데 새해 예산안 639조 원을 놓고 정치권은 엉뚱한 정쟁을 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의 지역구 생색용 ‘쪽지예산’ 싸움이 여전하고, 여야가 ‘윤석열표’, ‘이재명표’ 예산의 방어와 삭감에 열을 올린다. 

국가와 서민을 위한 충심은 희미하고 국가 운영을 설계하는 사실상 첫 예산안에 대한 야당의 견제는 과도하다. 국가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데 웬 국정조사니, 장관 해임이니 하는 정치적 요소를 끌어들인단 말인가. 아무리 정치는 싸움이라고 한다지만, 민생을 내팽개친 정치권의 충돌은 국민이 한 표, 한 표를 얼마나 소중하게 행사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한 해 살림 설계를 결정하고, 또 그 씀씀이를 집행하라고 국민이 뽑아줬고 세금을 냈는데 정파 싸움으로 예산안을 욕보이는 것은 국민과 세금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강화군 예산 6,394억, ‘인구정책’ 비전 아쉬워

중앙 정부의 난전(亂戰)과는 달리 우리 강화군은 일찌감치 내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강화군의 새해 본예산은 6,394억 원이다. 올해 대비 247억 원(4.03%)이 증가했다. 민선 8기 출범 후 첫 본예산 편성인 만큼 내년 이맘때 공개해야 할 ‘군계부(郡計簿)’가 튼실하길 바란다. 군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안정과 지역 경제 활력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강화군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소외계층을 따뜻하게 보듬는 현장 행정은 국가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는 더 소중할 것이다.

눈에 띄는 사업은 ▲기초연금 등 노인생활안정지원사업 615억 원 ▲장애인연금, 장애인활동지원사업 107억 원 ▲아동·영유아 지원사업 240억 원 ▲제3장학관 조성사업 17억 원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지원사업 23억 원 등이다. 모두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54억 7,000만 원밖에 확보하지 못했고, 종합적인 인구 유지와 확대 정책에 대한 비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히 어려운 과제다. 그렇지만 강력한 정책적, 행정적 의지는 필요하다. 의지는 곧 실행력이다. 예산안은 그 거울이다. 군계부가 더 촘촘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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